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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영(投影)
순수에서 소망으로 변화

그는 원과 삼각형, 사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의 추상(抽象) 작업을 10여년 넘게 제작하여 왔다. 밝은 청색과 보라, 흰색으로 그려진 작은 삼각형의 반복적 구성은 일정한 규칙과 질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추상화로, 시각적 착시 효과의 옵아트 영역을 넘어 투명한 공간의 창작이다. 공간의 무한성과 정신적 내면의 세계를 담은 <투영(投影)> 연작은 ‘순수(純粹)’에서 ‘소망(所望)’으로 변화되면서 더욱더 자신만의 빛을 강하게 반영시켜 나가고 있다.


1992년 정해숙의 첫 개인전에서 미술평론가 고(故) 이일 선생님은 그의 작업에 관하여 “기하학적 형태의 무한 변주(變奏)에 의한 하나의 ‘우주’가 형성되고 있으며, 대비와 통합을 통한 보다 원천적인 질서를 잘 나타내고 있다.”라고 평하면서, 내재적 리듬의 미(美), 정신적 세계가 투영된 기하학적 추상 공간의 아름다움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그의 기하학적 추상 작업은 1970년대 후반 대학시절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경향이 전시에 출품된 초기 작품은 1980년대 중반이다. 이때부터 그는 작은 삼각형과 사각형, 원을 중심으로 <투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연작이 제작되었다. 초기 작업은 원과 사각형이 삼각형을 위한 보조공간으로 구성되며, 대부분 전체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아주 작은 삼각형이었다.


화면 가득 찬 그의 삼각형은 전면 회화(All Over Painting)라는 추상표현주의와 옵아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구성으로 공간의 확장, 즉 무한대로 연결되는 표현이었다. 올 오버 페인팅은 어떤 상징적 의미보다는 형태와 색상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회화성, 그 자체의 미적 구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규칙적인 반복과 엄격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이나 원, 사각형의 기하학적 추상 형태는 회화의 본질을 의미하며, 조형적 질서의 미를 중요시하게 된다. 이들의 색채도 혼합된 중간색보다 맑고 밝은 순색을 강조하게 된다. 그의 색채가 청색과 흰색으로 시작된 것도 회화의 순수성 추구와 연결시켜 해석되고 있다.


1987년 제작된 정해숙의<투영:순수, Projection-Purity, 8704, Oil on Canvas, 80.3×80.3cm>는 가장 초기의 기하학적 추상화이다. 하나의 오차나 빈틈없이 그려진 작은 삼각형의 반복은 맑은 청색과 함께 엄격한 질서를 보여주는 구성으로 ‘순수조형미’를 추구하는 대표적 예이다. 여기서 그가 추구한 ‘순수조형’은 차갑고 엄격한 질서의 ‘추상(抽象)’이다. 현대회화에서 추상의 의미는 ‘추출’을 뜻한다. 많은 사물에서 공통된 면이나 근원을 뽑아내는, 즉 본질을 추출하는 것으로 인간의 독립된 정신작용을 말한다. 자연의 재현이나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 사물의 본성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현대회화에서 추상은 구체적 형태가 없는 점, 선, 면의 조형적 구성을 통해 사물이나 인간의 내재된 질서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까지 정해숙의 작업은 이처럼 ‘순수조형’을 모색하는 것으로 기하학적 형태와 밝은 색채가 갖는 리듬감과 질서의 미를 강조하고 있다. 초기 <투영> 연작은 주제나 감정표현이 전혀 없는 교과서적인 선(線)과 색(色)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조형작업인 것이다. 작은 삼각형이 반복적으로 평면을 가득 메우면서 결과적으로 화면은 입체적, 또는 건축적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삼각형과 사각형, 원의 건축적 공간은 기하학적추상의 새로운 변화로 주목된다. 동시에 그의 화면은 정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채도가 높은 청색과 흰색, 보라의 밝음으로 무한의 공간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초기 그의 공간은 사색적이거나 명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 보다는 화면의 조형적 구성으로 중력에 의한 물리적 공간으로 보여지며, 깔끔한 기하학적 형태의 질서미가 돋보이게 된다. 이러한 작업에서 그가 얻는 것은 형태의 믿음과 공간에 대한 확신, 그리고 색채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작업은 ‘순수조형미’를 추구하였던 초기의 기하학적 추상형태가 흔들림 없이 이어져 나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그의 작업에 변화는 주제와 내용적인 면이 크다. 형식적으로는 초기 작업의 연장이며, 내용은 과거에 없었던 종교적 주제와 자연의 이미지가 등장하여 기하학적 추상 작업이 이어지게 된다. ’90년대 초반부터 10여년간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그곳 자연을 추상화시키고, 동시에 기독교의 종교적 내용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투영(投影)> 연작의 ‘순수’는 1995년까지 지속되면서 이후 <투영>이라는 동일한 제목아래 부제로 기독교의 ‘소망(所望)과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뀐다. 산과 호수, 하늘을 나는 새의 이미지, 그리고 십자가의 모습이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자연의 모티브와 종교적 주제는 직선과 곡선 등 교차된 선의 면으로 나타난다. 역시 작은 삼각형이 화면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커다란 원과 사각형이 화면의 중심 축을 이룬다.

후기 작업에서도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나타난 삼각형이나 원, 사각형이 모든 형태의 기본이다. 그 기본 형태의 의미를 작가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원(圓)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모든것을 포용하고 있다. 또한 원은 신(神)적이라거나, 무수한 변을 가진 다각형에 동의하며,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성을 상징하고 있다. 삼각형은 인간의 의지(意志)를 표현한다. 삼각형의 정점인 꼭대기는 의지와 의지의 만남이다. 또한 나에게 사각형은 삼각형과 삼각형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전체가 부서져 조각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조각이 합쳐서 이룬 전체(全體)이다.”


이번 제2회 개인전에 출품된 후기 전반 작품에는 <투영-순수>에 ‘소망’의 종교적 성격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이제 <투영>은 ‘순수조형’의 탐구인 동시에 종교적 주제를 담아내는 작업으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자연 이미지 속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나 성서의 내용이 조화롭게 재구성되는 것이다. 구체적 이미지는 순수 추상화와 달리 감상자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한다. 여기에 나타난 그의 삼각형은 인간의 의지를 담은 조형적 표현이다. 이미 자연을 떠난 추상이 다시 자연과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종교가 개입되면서 그의 조형공간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게 된다. 이제 <투영-순수>는 <투영-소망>으로 변화되면서 우리 모두에게 자연과 종교의 이야기가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다.


기독교의 상징적 기호와 자연을 변형시킨 삼각형과 원, 사각형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의 ‘원천적 질서’의 미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정해숙의 기하학적 추상에 나타난 ‘원천적 질서’는 비례와 균형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주제(主題)’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비례와 균형, 그리고 주제와 모티브에 무슨 법칙이나 규범은 없다. 꼼꼼하게 섬유를 직조하듯 형태 하나하나를 오직 감각과 믿음에 의존하여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하 것은 주제와 함께 직관에 의해 탄생된 기하학적 형태들이 생명체(生命體)처럼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작은 삼각형 하나하나가 생명력이 있는 개채로 화면을 가득 채워나가고 있다. 스스로 생성되어 그 위력이 증가하는 무한대의 공간까지 퍼져 나간다.


종교적 주제가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은 1995년에 제작된 <투영> 연작 중에서 부제로 붙인 <사랑의 하나님, 1995>부터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열린 문, 1997>, 그리고 <소망, 1998>, <천국의 계단Ⅰ, 1999>, <기적, 2001>, <천국의 계단Ⅱ, 2001> 등이 있다. 이처럼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성서(聖書)의 내용을 비롯하여, 빛으로 충만한 성령과 자연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 추상 작품 속에 담아내게 된다.


이제 그에게 그림을 그리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아름다움보다 진실로 존재하는 사물의 근원성과 종교적 미의 세계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추상이며, 사랑의 하나님으로 대변하고 있다. 추상은 마음속에 간직하거나 숨겨진 대상의 본질을 나타내는 조형언어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추상 작업은 종교성과 자연 이미지 등장으로 더욱 풍부해진다.


기하학적 형태의 순수조형미 추구에서 점차 그 이면에 담겨진 정신과 심성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그는 종교성과 함께 인간의 맑고 투명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는 순수하게 정화된 인간의 내면, 그것은 가장 간결하며, 절제된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의지 표현으로 자연을 생각하며,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진실을 생활 속에 받아드려지면서 이미지가 등장한다. 순수조형의 절대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주제와 의미, 그리고 이미지를 찾아 나선다. 자연의 이미지 변형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것은 빛이다. 직선과 곡선에 의한 수직의 면이 빛을 대신하고 있다. 화면에 나타난 빛, 그것은 자연의 물리적 광선인 동시에 성령에 의한 은총의 빛이다. 그가 그린 기하학적 형태인 삼각형과 원, 사각형을 통해 나타난 인간의 의지는 이와 같은 빛을 통해 더욱 빛나며, 색채를 통한 숭고(崇高)의 사랑(청색)과 영원의 신비(보라), 고요와 침묵(흰색) 등이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색채가 의미하는 것은 기존의 미적 아카데믹한 해석과 달리하고 있다. 작가는 한정된 색채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것은 종속의 의미가 아니라 색채와 작가가 하나가 된다는 일체감의 결과이다. 순수한 색,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종교적 상징을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색채와 같이 기하학적 형태도 감정이 아니라 감각적이며, 이지적인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주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그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형태와 색채의 일치감으로 전체가 하나로 통합된 생명체처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10여년 넘게 일관된 형태와 색채를 유지하면서 추구하여 왔던 그의 작업은 순수와 직관을 통한 조형과 신앙의 결합으로 새롭게 우리 앞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상과 표현이라는 우리 시대의 순수 조형언어로 자신의 종교를 담아 내면서, 또 다른 조형예술로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작가가 오랜 동안 고심하면서 제작한 <투영(投影)-순수와 소망> 연작은 “우주 만물에 대한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를 통한 인간의 영혼 구원에 대한 희망”(작가노트)을 추구하는 것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비쳐지고 있다.


점점 더 단순해지는 우리의 삶에서 그의 작품은 자연의 따스함과 성령에 의한 빛의 충만이 넘치고, 인간의 허약함과 개인주의의 자만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연과 신과 인간과의 조화를 꿈꾸는 현대적 추상 회화로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이제 그에게 회화는 표현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아름다움도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아니라 추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숭고(崇高)의 작업이라는 작가의 신앙심 깊은 주장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그의 작업에 또 다른 변화와 다양한 전개를 기대해 본다.

2002. 1.
유재길(홍익대교수,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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